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각사지 십층석탑 (문단 편집) == 내용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원각사지 십층석탑 옛모습.jpg]]}}}|| 원각사는 원래 [[고려시대]]에 창건된 흥복사로, [[태종(조선)|태종]]의 둘째 아들인 [[효령대군]]의 요청으로 [[세조(조선)|세조]] 11년(1465)에 원각사로 고쳐 지은 절이다. 그러나 [[연산군]] 10년(1504)에 연방원이라는 기생방이 들어서고 중종 9년(1514)에 절이 헐리면서 없어졌다. 이 탑은 [[고종(대한제국)|고종]] 32년(1895)에 총 세무사로 재직하였던 영국인 브라운(J. M. brown)의 건의로 원각사 터에 공원이 들어서 탑골공원으로 바뀐 이후에도 원래의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산성비로 인한 손상 방지를 위해 유리 보호각 안에 보관되어 있다.[* 이 때문에 초등학교 과학 5단원 '산과 염기'에 예시로 수록되어 있다. 유리 보호각은 서울시가 1998년 착공해 1999년 말에 완공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의 보물로 지정되어 현재도 한국의 국보가 되었다. 매우 수려하면서도 기교적인 그 면이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탑파사상(塔婆史上) 손에 꼽히는 걸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구한말-일제강점기에 조선에 들어온 서양인들 사이에서도 조선에 왔으면 꼭 봐야 할 명물로 손꼽혔다. [[퍼시벌 로웰]]은 1883~1884년에 걸쳐 몇 개월 조선에 머무르는 동안 원각사지 석탑을 보고 석탑 옆에 있는 민가 집주인의 허락을 받아 지붕으로 올라가 사진을 찍었을 정도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석탑 가까이까지 민가가 있어서 지붕에라도 올라가지 않으면 제대로 사진 찍을 각을 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원각사지 십층석탑 1946년 국립중앙박물관.jpg|width=600]]}}}|| 1919년 3월 1일 일제에 항거하는 독립만세운동이 탑골공원에서 일어나자 이에 대한 복수로 일제에 의하여 원각사탑 상층부 3개 층이 파괴되고 탑의 반출이 시도된 적이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48228|#]]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퍼시벌 로웰이 촬영한 사진을 보면 이미 1884년경에도 상층부 3개 층은 파괴된 상태였기 때문. 이후 복원하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던 것을 1946년 2월 17일에 미군 공병대가 장비를 동원하여 복원해 주고 갔다. 위키백과에는 새똥으로 인해 부식되어 무너졌다고 되어있다. 새똥은 요산이 함유되어 있어서 대리석을 부식시킨다. 새똥뿐만 아니라 현대에는 [[산성비]]와 매연으로 인해 결국 1998년부터는 석탑을 유리로 둘러싸 보존하고 있다. 1894~1897년 동안 4차례 조선을 방문한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기행문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에는 300년 전 일본의 침략으로 최상층부 3개 층이 떨어져 나와 훼손되지 않은 채로 석탑 옆에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이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땐 어린 아이들이 그 상층부를 쪼개어 기념품으로 팔아먹은 탓에 많이 훼손되었다고 한다. 실제 사진을 보아도 다른 층과 다르게 많이 훼손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조선 후기에는 흰 돌로 지은 탑이라 하여 백탑(白塔)이라고 불렸으며, [[박지원(실학자)|박지원]]이 이 근처에서 살았던 적이 있어 그와 교류한 실학자들을 백탑파라고 일컫는다. 기단부의 3개층을 별도의 층으로 해석하여 13층으로 봐야 한다는 [[https://www.msn.com/ko-kr/news/other/%EA%B5%AD%EB%B3%B4-%EC%9B%90%EA%B0%81%EC%82%AC%ED%83%91%EC%9D%80-13%EC%B8%B5-%E6%97%A5%ED%95%99%EC%9E%90-%EC%A3%BC%EC%9E%A5-10%EC%B8%B5%EC%84%A4-%EC%97%90-%EC%98%A4%EB%A5%98/ar-AASDJq3?ocid=msedgntp|연구 결과]]가 있다. 현재 계속 부식이 진행되고 있어 [[2030년]]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경내로 옮기는 계획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